스포츠역사조회 29

⚾ 박찬호 MLB 첫 승, 1996년 리글리 필드의 4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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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유닛
2026-09-05 18:54
박찬호의 1996년 MLB 첫 승

1996년 4월 6일.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서 LA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가 만났다.

박찬호는 이날 선발투수가 아니었다.

다저스 선발은 라몬 마르티네스였다. 그런데 2회초 타격을 마친 뒤 1루로 뛰는 과정에서 다리를 다쳤다. 더 던질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박찬호가 불펜에서 호출됐다.

당시 박찬호는 23세였다.

1994년 메이저리그에 처음 올라왔지만 자리를 잡았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였다. 데뷔 첫해에는 두 경기밖에 던지지 못했고, 1995년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1996년은 달랐다. 개막 로스터에 포함됐고 다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첫 기회가 시즌 다섯 번째 경기에서 갑자기 찾아왔다.

마운드에 올라온 박찬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선발투수가 예상보다 일찍 내려간 경기의 흐름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쉽지는 않았다.

컵스 타선에는 마크 그레이스와 새미 소사 같은 타자들이 있었다. 특히 소사는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장타력을 보여주고 있던 타자였다.

박찬호는 이날 네 이닝을 던졌다.

안타 세 개를 맞았고 볼넷도 네 개를 내줬다. 주자가 쌓이는 장면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신 삼진을 일곱 개 잡았다.

그리고 점수는 하나도 주지 않았다.

다저스 타선은 3회 한 점을 먼저 냈고 4회 한 점, 6회 다시 한 점을 보탰다. 컵스가 추격점을 낸 것은 박찬호가 내려간 뒤였다.

박찬호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스코어는 계속 다저스 쪽에 있었다.

결국 다저스가 3-1로 이겼다.

승리투수는 박찬호였다.

1996년 메이저리그 기록을 놓고 보면 시즌 초반의 한 경기일 뿐이다. 다저스는 당시 아직 2승밖에 거두지 못했고, 정규시즌도 거의 전부 남아 있었다.

한국에서는 의미가 전혀 달랐다.

한국에서 태어난 투수가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된 것은 처음이었다.

박찬호가 처음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1994년이었다.

한양대 재학 중이던 그는 다저스와 계약했고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은 채 그해 4월 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데뷔와 정착은 다른 문제였다.

1994년과 1995년을 합쳐 메이저리그에서 던진 이닝은 많지 않았다. 1995년 10월에는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처음 선발 등판했지만 승리를 얻지는 못했다.

그래서 시카고에서 나온 첫 승에는 거의 2년이 걸렸다.

첫 승을 거둔 방식도 박찬호의 이후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한국 팬들에게 박찬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선발투수다. 높은 다리 동작에서 빠른 공을 던지고, 선발로 긴 이닝을 책임지는 모습이 익숙하다.

첫 승은 구원승이었다.

선발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준비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가 네 이닝을 막았다.

당시 기록에서 눈에 띄는 숫자는 7탈삼진이다.

제구가 완벽했던 경기는 아니었다. 볼넷 네 개를 허용했다. 그럼에도 실점할 수 있는 순간마다 삼진으로 직접 아웃카운트를 만들었다.

박찬호 특유의 힘 있는 빠른 공이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통할 수 있다는 장면도 이 경기에서 분명하게 나왔다.

첫 승 이후 일정은 빠르게 움직였다.

라몬 마르티네스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박찬호에게 선발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닷새 뒤 다저스타디움에서 플로리다 말린스를 만났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마운드에 섰다.

5이닝 동안 안타 하나만 허용했고 실점은 없었다. 삼진은 여섯 개였다. 다저스가 5-0으로 승리하면서 박찬호는 시즌 두 번째 승리까지 가져갔다.

시카고에서의 첫 승이 단발성 장면으로 끝나지 않은 이유다.

1996시즌 박찬호는 48경기에 나왔다. 선발 등판은 10경기였고 나머지는 불펜이었다.

성적은 5승 5패, 평균자책점 3.64.

108⅔이닝 동안 119개의 삼진을 잡았다.

본격적인 선발투수 박찬호는 그다음 해부터 볼 수 있었다.

1997년 14승 8패, 평균자책점 3.38.

이후 1998년 15승, 2000년에는 개인 한 시즌 최다인 18승을 기록했다. 2001년에는 올스타에도 뽑혔다.

몇 년 사이 박찬호는 다저스 선발진의 한 자리를 차지한 투수가 됐다.

그 과정은 한국 야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를 줬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선수가 미국 프로야구 최고 무대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지킨다는 것은 실제 사례가 없는 일이었다.

박찬호가 먼저 길을 만들었다.

이후 김병현과 서재응, 김선우, 류현진 등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랐다. 타자들도 차례로 미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1996년에는 그런 미래를 알 수 없었다.

리글리 필드에 올라온 박찬호 역시 시즌을 어디에서 마칠지 확신할 수 없는 젊은 투수였다.

그날 다저스가 기록한 안타는 다섯 개에 불과했다. 컵스는 아홉 개를 쳤다.

안타 수만 보면 컵스가 많았다.

경기는 다저스가 가져갔다.

그리고 공식 기록지 승리투수 칸에 처음으로 박찬호의 이름이 적혔다.

세월이 지나 박찬호의 경력을 이야기하면 124승, 올스타, 다저스의 에이스 시절처럼 훨씬 큰 숫자들이 먼저 나온다. 당시 그의 활약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국내 스포츠 뉴스의 주요 소재가 됐다.

그래도 출발점을 찾으면 날짜는 하나로 돌아간다.

1996년 4월 6일.

시카고 리글리 필드.

갑자기 선발투수가 다쳤고, 불펜에 있던 박찬호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4이닝 3피안타 4볼넷 7탈삼진 무실점.

다저스 3, 컵스 1.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첫 승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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